강나루 건너 밀밭/자연과 인간

‘바다의 황소’ 돗돔이 돌아왔다

물곰탱이 2009. 5. 16. 18:49

chosun.com

 

 

‘바다의 황소’ 돗돔이 돌아왔다

 

입력 : 2009.05.16 02:50 / 수정 : 2009.05.16 18:04

 

돗돔과 키 재기. 성인 남자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다.

'전설의 물고기' 돗돔, 2000년대 들어 사라져
최고급 횟감 '돗돔', 워낙 귀해서 먹어본 사람조차 귀해
178cm짜리 돗돔, 420만원에 팔려…다금바리 시세에 비하면 헐값
부산의 일식 요리사들 "이 정도 돗돔이면 2000만원어치의 요리를 만들 수 있다"

부산에서 191cm, 150kg짜리 돗돔이 낚여 화제다. 지난 5월 14일 아침 7시, 부산 북동쪽 50마일(뱃길 3시간) 해상에서 부산낚시인 김문철씨와 그 일행이 20분 사투 끝에 끌어 올렸다. 이날 돗돔의 어군을 맞닥뜨린 듯 뱃전에 늘어진 낚싯줄들이 동시에 빨려들었고 아수라장이 된 갑판에서 함께 탄 부산낚시 이정구 사장과 동료 이정부씨도 각각 178cm, 160cm 돗돔을 낚아냈다.  

이번에 낚인 191cm는 돗돔 기록을 10년 만에 갈아치웠다. 종전기록은 99년 1월 29일 부산 나무섬 남쪽 해상에서 부산의 원성춘씨가 낚은 174cm였고, 비공식 기록으로 89년 6월 18일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에서 목포의 김효식씨가 낚은 190cm, 120kg짜리 돗돔이 있었다.

돗돔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낚을 수 있는 가장 큰 물고기다. ‘돗’은 크다는 뜻의 접두어. 제주도에선 큰 벤자리를 돗벤자리라 부른다. 돗의 어원이 ‘돼지’라는 말도 있는데 제주도에선 돼지를 ‘도새기’ 혹은 ‘돗’이라 부른다.

돗돔은 우리나라 남해, 동해와 일본 북해, 러시아 연해주에만 서식하는 세계적 희귀종이다. 일본에선 ‘오구치이시나기’라 부른다. 평소에는 400~600m 심해에 살다가 5~7월 산란기에 잠깐 50~70m 수심의 얕은 곳으로 올라오는데 그때 몇 마리가 낚시인의 미끼에 걸려드는 것이다.

5월 14일 부산에서 낚인 191cm 돗돔. 부산항에서 북동쪽으로 50마일 떨어진 난바다 심해에서 낚아 올렸다.

돗돔낚시는 해상전투에 가깝다. 시시한 장비로는 녀석과 상대할 수 없다.

황소도 끌어낼 만한 200호 원줄에 심해의 급류를 이기기 위한 100호 추를 달고 상어낚시용 바늘에 문어나 고등어를 통째 꿴다. 무엇보다 돗돔의 어군을 찾는 게 급선무다. 일단 돗돔 산란처를 알고 있는 노련한 선장의 배를 타지만, 배가 그곳을 찾아가더라도 바람과 조류가 맞지 않으면 심해의 돗돔 굴 앞에 정확히 미끼를 떨어뜨리기 어렵다. 때마침 돗돔이 굴 밖으로 나와 먹이를 찾고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

마침내 긴 낚싯줄에 신호가 오면 뱃전은 포탄이 떨어진 함상(艦上)으로 변한다. 돗돔은 미끼를 무는 즉시 자신이 머물던 굴로 돌아가려 하는데 이때 혼신의 힘을 다해 녀석을 붙잡고 늘어져야 한다.

먼저 어신(魚信)을 본 사람이 장갑을 낀 손으로(맨손으로 잡으면 큰일 난다) 낚싯줄을 잡고 버티면 동료들이 함께 달려들어 줄다리기를 벌인다. 이때 반드시 한 명은 당겨 올린 낚싯줄을 사려주어야 한다. 자칫 뱃전의 낚싯줄이 발목에 휘감기면 돗돔이 순간적으로 힘을 쓸 때 조여진 줄이 살 속으로 파고들 수 있다. 2006년 7월 30일 완도군 여서도에서 낚인 163cm 돗돔은 1시간 30분 만에 수면에 떴는데, 두 사람이 탈진해버린 뒤 세 번째로 낚싯대를 넘겨받은 사람이 끌어냈다. 

돗돔은 다금바리(자바리)와 같은 농어목의 육식어로서 최고급 횟감이다. 워낙 귀해서 먹어본 사람조차 귀하다. 심해에 사는 물고기들은 찬 수온에 견디기 위해 지방을 많이 축적한다. 그래서 돗돔은 흰살생선이면서도 기름지다. 첫맛은 참치와 비슷하고 쇠고기 육즙의 향도 난다. 가장 맛있는 부위는 껍질과 턱살(가슴지느러미 아래 살)이다. 두꺼운 껍질은 끓는 물에 데쳐서 소금에 찍어 먹는데 고소하고 쫀득하다. 턱살은 얇게 썰어서 한 점씩 입에 넣으면 씹는 듯 녹는 식감이 일미다.

그러나 다른 생선에서 맛있는 부위로 손꼽히는 뱃살은 너무 기름기가 많아 맛이 떨어진다. 그리고 간은 먹으면 안 된다. 돗돔 간에는 비타민A가 다량 함유돼 있어 비타민A 과잉섭취로 인한 두통, 구토, 피부박리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이놈의 간이 또 여간 맛있는 게 아니어서 심호흡을 하고 젓가락을 들이대는 미식가들도 있다. 

이번에 낚인 세 마리 돗돔 중 178cm짜리는 420만원에 팔렸다고 한다. 다금바리의 시세에 비하면 헐값에 팔린 셈이다. 부산의 일식 요리사들은 ‘이 정도 돗돔이면 부위별로 이천만원어치의 요리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1989년 6월 18일 가거도 소국흘도에서 낚인 190cm, 120kg짜리 돗돔.
99년 1월 29일 부산 나무섬 남쪽 해상에서 부산 낚시인 원성춘(오른쪽)씨가 낚은 174cm 돗돔.

돗돔은 흔히 ‘전설의 물고기’로 불린다. 1년에 겨우 한두 마리 낚일까 말까 하니 그럴 만하다. 그러나 과거엔 돗돔이 이렇게까지 귀한 물고기는 아니었다. 80년대 초만 해도 가거도에 돗돔 어선이 12척이나 있었다. 그러나 돗돔 자원은 빠르게 감소하여 99년부터 7년 동안은 한 마리도 낚이지 않았다. 그 후 2006년 7월에 완도군 여서도에서 163cm 한 마리, 2008년 8월에 가거초(가거도 서쪽 47km 거리의 海中島)에서 160cm 한 마리가 낚였을 뿐이다. 그래서 이번의 돗돔 소식은 더없이 반갑다. 191cm가 낚인 며칠 전에도 150cm를 비롯한 돗돔 두 마리가 낚였다. 경사가 연달아 터지는 셈이다. 지금 부산은 “사라진 돗돔이 돌아왔다”고 들떠 있다.

그러나 낚시인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돗돔을 반기면서도, 어느 순간 ‘저립’처럼 사라져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저립(재방어)은 2m 넘게 자라는 삼치의 일종으로 제주도와 일본 큐슈 사이 해역에서만 볼 수 있었던 한․일 특산종이었는데, 8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 단 한 마리도 잡힌 적이 없어 동시에 절멸된 것으로 보고 있다. 남획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환경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참치만큼 거대한 어종 하나가 지구상에서 증발해버린 것이다.

돗돔이 저립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돗돔에 대한 더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일본에선 돗돔이 초여름 산란기에만 연안으로 접근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1월과 2월에도 무리지어 낚인 바 있다. 돗돔이 우리나라 연근해에 머무는 기간이 의외로 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반가운 소식은 최근 경남수산자원연구소와 통영 해양수산사무소에서 돗돔 양식이 시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해양연구원의 명정구 박사는 “남해와 동해 연안에서 그물에 잡히는 20~30cm 돗돔들을 4~5년 전부터 가두리에서 길러 벌써 20kg, 60cm 안팎으로 성장했다. 치어도 3년 만에 7kg으로 자라는 등 성장속도가 빨라 양식유망어종으로 합격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만간 우리 식탁에서도 돗돔의 신비로운 맛을 즐길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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