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교육 스포츠

이성주 - <황우석의 나라>

물곰탱이 2012. 4. 28. 12:44

 

내가 쓴 <황우석의 나라>, 제대로 읽어달라
[기고- <동아> 전 기자 이성주씨] 지금은 싸움이 아니라 토론을 할 때
황우석 사태의 교훈을 다룬 책 <황우석의 나라>가 언론계와 과학계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저자 이성주(전 <동아일보> 의학담당 기자)씨는 28일 <오마이뉴스>에 보내온 기고문을 통해 책의 집필 경위와 최근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편집자 주>
▲ <황우석의 나라> 저자 이성주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책은 출간되는 순간 독자의 몫이라는 출판계의 금언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저자의 집필 의도와 360도 가까운 방향으로 오독(誤讀)이 진행될 때 저자가 침묵하고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필자의 졸저 <황우석의 나라>(바다출판사)가 언론계와 과학계에 논란을 던지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출판 무렵부터 딸들에게 "낯선 사람을 따라가면 안된다"고 주의를 줄 만큼 이 책 출간의 여파에 대해 걱정했지만, 일부 영역에서는 졸저에서 "제발 이러지는 말자"고 주장한 방향으로 논의가 전개되고 있어 집필 의도를 밝혀야만 할 듯하다.

나는 2005년 여름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올 때 미국에서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황 교수 신드롬에 대해 어떻게든 대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귀국 후 인사가 나기 전까지 틈만 나면 관련 전문가를 만나며 이에 대해 준비했지만 신문사 사정으로 내 전공 분야와 무관한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황 교수 사건에 대해 관심을 뗄 수가 없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황 교수 신드롬이 아무런 반대없이 진행되면 수많은 환자가 고통 속에서 숨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이후 다행히 올곧은 언론인과 과학자들 덕분에 황 교수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서는 한 사람의 기록자로서 이 사태를 정리하고픈 욕심이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무엇을 반성할 것인가

의학 분야를 맡고 얼마 동안은 특종이 가장 큰 보람이었지만, 이 분야에 대해 어렴풋이 뜨이고 난 뒤에 내가 쓴 기사가 독자들에게 실제로 도움을 주었거나 학교에서 교재로 쓰일 때를 알게 되는 순간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정보와 기록이 그득한 황우석 사건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이 책의 집필로 이어졌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황우석 사태가 대한민국의 언론, 과학, 정치 및 사회의 그림자가 투영된 사건이라는 전제를 깔고 이 사태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반성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책을 집필했다.

2005년 11월 필자와 출판사는 황 교수에 대한 책을 내기로 처음 합의했고, 책의 기획 단계에서 비난, 고발보다는 '이번 사태가 한국 사회에 요구하고 있는 성찰'에 주안점을 두기로 뜻을 모았다. 여러 분야의 취재원으로부터 황 교수의 학창시절이나 언론, 정치계와 관련한 제보를 숱하게 받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성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무시했다.

필자는 이번 사건이 황 교수를 비롯한 과학계·언론계·정치계 중 어느 한 곳의 문제가 아니고, 그들의 문제도 아니며, 바로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봤다. 여기에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포함돼 있고 물론 나도 포함돼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나를 몇 년 동안 가위눌리게 하고 부끄럽게 한, 기자 시절 내가 저지른 여러 잘못을 고백했다.

민주주의가 없던 신드롬, 언론과 정치도 닮은꼴

▲ 지난해 8월 세계 최초의 복제개인 스너피에 대한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기자회견에 몰려든 기자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필자는 이번 사건이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의 부재에서 왔다는 다소 생뚱맞은 진단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는 유한한 존재이며 이 때문에 반증과 토론이라는 절차를 통해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시스템이지만 이번 사태에서는 정부, 언론, 과학계 모두에서 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과학은 사람이 언제나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가설의 제기→반증 또는 확증→오류의 수정'이라는 절차에 따라 진실에 접근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황우석 교수는 애국심, 원천기술, 국가기밀 유출 등을 도구로 자신의 연구영역을 비(非)과학으로 만들어버렸고 그의 추종자들은 아직도 이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과학은 어떤 곳을 정복하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는 그런 학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성과에서부터 여러 가지를 배우는 과정이라는 점에서도 황 교수의 업적이 허점투성이라는 점을 입증하려고 했다.

황 교수 사태를 진단할 때 언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100여 년 전 프랑스의 '드레퓌스'사건과 마찬가지로 황 교수 사태에서도 언론이 줄기세포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나는 기존의 선악·피아의 개념으로 언론을 보는 대신, 신문사의 편집국 간부와 기자 대부분이 좋은 보도를 위해 사생활을 반납하는데 왜 보도는 독자의 수준에 못 미치고 사회의 조화와 발전에 훼방꾼이 되곤 하는가에서 논의를 출발했다.

나는 언론도 유한한 인간이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이므로 과학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인 반증과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기사를 제안해서 채택돼 지면이나 화면으로 나가는 언론의 과정이 과학의 반증 시스템과 닮았지만 황 교수 사태는 이런 언론의 민주주의의 원리에 입각한 제작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발생했다는 내 주장에 많은 동료들이 공감했다.

필자는 한국 언론이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결국 언론 조직부터 대화와 토론이 부족한 비민주주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엉터리 기사를 양산했다고, 그러므로 시스템 개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과학과 언론뿐 아니라 정부에도 책임이 크다고 봤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황 교수 사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알려지지 않은 여러 사례를 들어 비판했다. 나는 정부의 의사소통구조가 비판을 거부하는 한, 정부가 관변과학을 포기하지 않고 '먹고살기 위한 과학'에서 '개인의 행복을 위한 과학'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 한 다음 정부에서도 똑같은 잘못이 벌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진행형인 황우석 사태, 통과의례로 승화시켜야

▲ 지난 10일 오후 서울대 본관앞에서 정운찬 총장의 승용차를 가로막고 시위를 벌이던 황우석 교수 지지자들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나 책 출간 이후 논의는 엉뚱하게도 책에 인용된 특정 언론과 개별 기자들의 에피소드에 대한 것으로 넘어갔으며 필자가 책에서 "제발 이러지는 말자"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작은 황우석 사태가 필자를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고 필자는 토론과 성찰의 소재가 아니라 전쟁의 무기를 제공한 셈이 된 것이다.

이런 모든 사태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따지자면 깜냥을 넘는 거창한 주제에 대해 책을 쓴 저자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원하는 부분을 자기 식으로만 읽는 오독의 주체에게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책에서 누누이 밝혔고 언론사와의 인터뷰 때마다 강조했듯, 이 책은 특정집단을 공격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그런 목적이었다면 다른 식으로 정색을 하고 거기에 맞는 재료로 썼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황 교수 사태의 피아에서 벗어나서, 마치 프랑스가 드레퓌스 사건을 뼈아프게 반성하며 이성적 사회로 승화했듯, 이번 사태에서도 사건의 실마리 하나를 놓치지 말고 반성과 토론을 통해 보다 성숙한 사회를 위한 통과의례로 삼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황우석 사건이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듯, 이 사건에 대한 토론과 반성도 진행형이라고 믿고 싶다. 나의 졸저가 언론학·과학철학·사회학·역사학·정신의학·심리학·정치학·경제학 등에서 다양한 후속 연구를 촉발하기를 빈다. 나의 책 역시 진행형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졸저에서 다음 질문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며 끝을 맺었다.

"현대사회에서 자아가 영웅 없이도 충족감을 갖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널리즘을 회복시키기 위해 소비자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생명 경시 풍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국민의 집단히스테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학 발전과 경제 발전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과학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우리는 황우석 사건을 국사 또는 과학 교과서에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다수의 목소리 속에서 소수의 의견을 존중할 방법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교육을 통해 개인의 인격과 이성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골라야 할까. 애국이 우선인가 개인의 행복이 우선인가…."

 

"사장은 'MBC 좀 더 비판' 주문하고
국장은 '돌아서야 한다'는 건의 묵살"
전직 <동아> 기자가 본 언론계 '황란' 막전막후 ①
  손병관(patrick21) 기자
황우석 연구팀의 논문 조작 사건은 우리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몰고 왔다. 황우석 사태가 이처럼 큰 파장을 일으킨 데에는 '황우석 신화'에 도취돼 진실을 외면하고 대중들을 오도한 신문·방송·통신사들의 책임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97년부터 2004년까지 <동아일보> 의학담당기자였던 이성주씨의 근저 <황우석의 나라>(바다출판사)는 눈여겨볼 만하다. 저자가 황우석 사태 당시 <동아>의 막전막후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3년간 다니던 직장을 지난 1월 그만뒀다고 한다.

이씨는 "기자에게 눈으로 보고있는 진실을 기사로 쓸 수 없다는 것은 차꼬이자 고문"이라고 지난 몇 달간의 고민을 토로했다. <오마이뉴스>는 황우석 사태 당시 휘청거렸던 <동아> 편집국의 내부를 조명한 <황우석의 나라>를 소개한다. 책에 언급되지 않은 일부 내용은 23일 저자와의 인터뷰로 보강했다. <오마이뉴스>는 24일 책에 언급된 <동아>의 김학준 사장과 임채청 편집국장의 반론을 들어보고자 했으나 두 사람은 각각 '지방출장 중', '회의중'이어서 연락이 닿지 않았다.
<편집자 주>
▲ 서울 세종로 동아일보 사옥.
ⓒ 오마이뉴스 권우성
"편집국장실은 7시 무렵부터 30여분 동안 침묵에 휩싸였다. 편집국장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숙고에 들어갔다.

평소 일부 부장과 일선 기자들의 보고를 무시하고, '일관성 있게' 황우석 교수를 지지해 왔기 때문에 충격의 강도가 더했으리라.

<동아> 사장 출신인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 겸 부총리가 사표를 냈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나돌았다.

노성일 이사장에게 개인적 비리가 있다는 정보보고 형식의 글들이 사내 인터넷망으로 올라왔다."


이성주씨는 2005년 12월 15일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의 폭로로 황우석 사태가 급반전된 <동아> 편집국의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동아> 편집국장은 임채청씨로, 그는 지난달 24일 한나라당 당직자들과 <동아> 기자들의 만찬 자리에도 참석했던 인물이다.)

경쟁지 <조선일보>도 사정은 비슷했다. <조선> 노조는 그로부터 일주일 뒤 나온 노보를 통해 "이날 밤 <조선> 편집국의 분위기가 (2002년) 대선 개표가 끝난 직후처럼 침울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조선>이 폭탄선언 며칠 전부터 논조를 바꿀 낌새를 보인 데 반해 <동아>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신문사가 느낀 충격파가 훨씬 강했다. MBC 시사교양국과 <프레시안>, <오마이뉴스>, <한국일보>, <한겨레>를 제외한 대다수 언론사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노 이사장의 폭로 이후 <동아>의 편집방침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말자"

▲ <황우석의 나라>(바다출판사) 책표지와 저자 전 동아일보 기자 이성주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노성일과 황우석의 기자회견 공방이 있던 16일 이씨가 회사에 들어오자 임채청 편집국장이 대뜸 그에게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씨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자 임 국장은 돌아서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고 한다.

이씨의 회고는 이어졌다.

"나는 다음날 사내 집배신망에 '사법 파동이 있으면 젊은 검사의 의견을 취재하듯, 이렇게 중요한 과학적 이슈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과학자들의 의견을 들었으면 한다'는 글을 올렸다. 편집국의 여러 선후배들이 호응했고 담당기자도 수긍했다. 하지만 편집국 간부들은 이런 사내 비판이 오히려 불편했던 모양이다. 한 간부가 글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내용이라 글을 내렸지만, 가슴 한쪽 언저리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어왔다."

<동아>는 이미 노 이사장 폭로 이후 열린 편집회의에서 "앞서지도 말고 뒤처지지도 말자"는 취재방침을 정하고 사내에 이를 공지한 상태였다. 타 언론사 기자들이 이를 알고 조롱하기도 했지만, 국제부의 이모 기자가 반발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동아> 노조의 책임론도 함께 거론했다.

"<동아> 노조는 몇 년 동안 아무 기능을 못하고 있다. <동아> 노조위원장이나 공보위 간사를 맡은 기자들은 인사 등의 형태로 불이익을 받았다. 정리해고된 뒤 여당 전문위원으로 간 사람도 있다. <동아>는 외부의 비판을 싫어하고, 내부에서 비판하는 사람들에도 인색하다. 1등 하다가 2∼3등으로 추락한 데 대한 자신감의 결여다."

이씨는 "(자신이) 2005년 8월 미 존스홉킨스대 연수를 다녀온 뒤 신격화한 황우석 교수를 사람의 위치로 끌어내리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역부족이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서울대 소장파 교수들이 검증을 요구했던 12월초의 편집국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동아>는 일부 현장기자들이 정보보고 형식으로 황 교수의 부정적인 면을 보고했지만 신문 제작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사태가 급변할 때에는 몇몇 부장이 차례로 편집국장에게 이제 돌아서야 할 시점이라고 보고했지만 묵살됐다."

김학준 사장 "MBC 좀더 비판해야" → 다음날 1면 제목 '황 교수 죽이러 왔다'

당시 서울시 교육청을 출입하고 있던 이씨는 황우석 관련기사를 쓸 수가 없었기 때문에 '황우석 신드롬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지면에는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이씨가 답답한 나머지 그해 <신동아> 12월호(11월20일경 발행)에 황우석 신화의 문제점을 상술한 기고문을 게재하려고 했지만, 인쇄 직전에 이 사실을 안 신문사 간부가 출판국 간부에게 출판 보류를 요구했다. <신동아> 건이 불발된 후 이씨는 데스크로부터 의학 분야보다는 교육 분야에 집중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노성일의 폭로로 사태가 급반전된 뒤 문제의 기사가 <신동아> 1월호에 실렸지만, 결과적으로 뒷북치는 기사가 됐다는 게 이씨의 평가다.

이씨는 MBC < PD수첩 >의 취재윤리 문제를 집중 부각시킨 YTN 인터뷰가 나온 뒤에도 "피츠버그에 한국특파원 10여 명이 진을 치고 있는데 안 교수를 따라간 YTN 기자만 김선종 연구원과 인터뷰한 것이 수상하다, 공작의 냄새가 짙다"고 열변을 토했지만,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김학준 <동아> 사장이 작년 12월 5일자 신문이 나오기 전에 편집권 침해로 비칠 행동을 한 것도 지금 시점에서는 곱씹어볼 문제다.

이씨는 간부들의 증언을 근거로 "김 사장이 첫 판 신문과 YTN 뉴스를 보고 편집국으로 내려와 MBC를 좀 더 비판해야 하지 않겠냐는 '독자로서의 의견'을 전했다"고 밝혔다.

"<동아>는 전날 김 사장의 조언에 영향을 받았는지 1면 기사에 '황 교수 죽이러 여기 왔다'는 섬뜩한 제목을 달았다. PD들은 이 말을 안 했다고 주장하지만, <동아>는 나중에도 개의치 않았다."

이씨는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사장이 오전 간부회의에 참석하니 그의 의견이 알게 모르게 편집국에 반영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과만을 놓고 봐도 김 사장의 '조언'은 <동아>가 황우석 사태를 냉정하게 고찰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 <동아>는 2005년 12월5일 1면 톱기사로 YTN 인터뷰에 나온 발언을 제목으로 뽑았다. 그러나 MBC < PD수첩 >은 "피츠버그대 연구원들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발했고, 발언 당사자인 박종혁씨도 이에 대해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 동아일보 PDF

황우석 사태와 함께 춤춘 '코미디' 언론... 원인은 관료화

황씨가 갑작스럽게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뒤의 언론 보도들도 한편의 코미디였다. <연합뉴스>가 8일 "황우석 교수가 죽도 못 먹는다"고 보도한 뒤 너도나도 '죽도 못 먹는다'고 똑같은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동아> 기자는 데스크에 "황 교수가 식사를 잘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이씨가 '시대의 석학'으로 존경해왔던 최정호 객원 대기자(울산대 석좌교수)의 '추락'도 그에게는 가슴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최 교수는 12월 8일자 기명칼럼에서 "이상한 정부 밑의 괴상한 방송 프로그램으로 국민의 긍지와 국가의 위신이 처참하게 망가지는 꼴을 봐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자 그는 <동아>에 절필을 통보했다. 한 네티즌이 최 교수의 오류를 지적하며 절필을 권하자 그가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김학준 사장의 만류로 다시 글을 쓰게 됐는데, 이번에는 "젊은 과학자들이 학계의 전문 서클이 아니라 언론권력에 접근해 제보한 것은 실망스럽다"고 썼다.

이씨는 "최 교수 같은 시대의 석학이 어떻게 황 교수 사태에서는 저렇게 무지를 드러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개탄했다. 최 교수는 23일자 신문에도 칼럼을 쓰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씨는 <동아>가 황우석 사태에 있어서 극단적인 보도로 치달아간 원인으로 언론사의 관료화를 지목했다. 언론사 내부의 의사소통 구조가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려면 시스템을 개혁해야 하고, 적어도 간부와 평기자 모두 관료화된 현실을 인정하기라도 해야 큰 오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동아>는 황우석 사태의 교훈을 다룬 작년 12월 24일자 사설에서 "국민이 황 교수팀에 지나친 기대를 갖게 된 데는 언론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자신의 책임을 슬쩍 언급했다. 이씨는 "일부에서는 원론적 사과에 그쳤다고 비판하지만, <동아> 사정을 아는 사람은 <조선>과 달리 이 정도 사과라도 했다는 데 일말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자족했다.

 

"황우석 신용카드로 고급술집 드나든 기자 있었다"
전직 <동아> 기자가 본 언론계 '황란' 막전막후 ②
  손병관(patrick21) 기자
황우석 연구팀의 논문 조작 사건은 우리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몰고 왔다. 황우석 사태가 이처럼 큰 파장을 일으킨 데에는 '황우석 신화'에 도취돼 진실을 외면하고 대중들을 오도한 신문·방송·통신사들의 책임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일보> 의학전문기자였던 이성주씨의 근저 <황우석의 나라>(바다출판사)는 눈여겨볼 만하다. 97년부터 2004년까지 <동아> 의학담당 기자였던 저자가 황우석 사태 당시 <동아>의 막전막후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3년간 다니던 직장을 지난 1월 그만뒀다고 한다.

이씨는 "기자에게 눈으로 보고있는 진실을 기사로 쓸 수 없다는 것은 차꼬이자 고문"이라고 지난 몇 달간의 고민을 토로했다. <오마이뉴스>는 황우석 사태 당시 휘청거렸던 <동아> 편집국의 내부를 조명한 <황우석의 나라>를 소개한다. 책에 언급되지 않은 일부 내용은 23일 저자와의 인터뷰로 보강했다. <오마이뉴스>는 24일 책에 언급된 <동아>의 김학준 사장과 임채청 편집국장의 반론을 들어보고자 했으나 두 사람은 각각 '지방출장 중', '회의중'이어서 연락이 닿지 않았다.
<편집자 주>
▲ <황우석의 나라> 저자 이성주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 1월 서울대 조사위의 발표로 황우석씨의 논문조작이 확실시되자 <동아>의 한 간부가 이성주씨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큰일날 뻔했어. 황 교수가 <동아> 선정 2004년 '올해의 인물'로 뽑힌 뒤 신문사 동료들과 함께 그와 저녁을 먹었어요. 황 교수가 급히 갈 데가 있다면서 고급술집에 가서 기분 좀 풀라며 신용카드를 주더군요. 우리가 '이러는 법은 아니다'고 사양했기에 망정이지…."

황씨는 왜 언론사 간부들에게 신용카드를 주려고 했을까? 다음의 에피소드를 통해 황씨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2002년 4월 황 교수는 서울대학교 동원관에서 한 방송국의 다큐멘터리팀과 저녁을 먹다가 전화를 걸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기준 총장의 땅 문제로 기사를 쓰는 모양인데 A일보의 편집국장과 B일보의 간부에게 전화해서 잘 봐달라고 부탁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답하더라.'

당시 다큐멘터리팀의 한 팀원은 '황 교수가 우리와 함께 식사한 동원관의 방을 이기준 총장과 자신만 쓴다고 하는 등 과시가 대단했으며 촬영이 끝날 무렵 자신에게 온 편지다발을 보여줬는데 온갖 민원성 편지도 섞여 있었다'고 말했다."


이기준 당시 서울대 총장은 대기업 사외이사 겸임과 아들의 병역문제 등으로 학내 교수 및 학생들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고 있었는데, 황씨는 자신이 해야할 연구는 뒷전으로 미뤄놓고 언론사에 '이기준 구명' 로비를 벌이고 있었던 셈이다.

이씨가 2004년 8월 미국 존스홉킨스대로 연수를 떠나기 직전에도 황우석팀에 대한 호감이 흔들리는 일이 생겼다. 한 기자가 황씨의 신용카드로 고급술집을 자유롭게 이용한다는 사실을 이씨가 알게 된 것이다. 이씨는 "기자들에게는 검소한 생활을 그렇게 강조하더니… 뒷머리를 홍두깨로 퍽 맞은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씨는 일부 기자들의 이같은 행태가 '황우석 장학생'을 만들려는 황씨의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이씨는 "<연합뉴스>, <경향>, <조선>, KBS 등에는 황 교수의 장학생이라고 불리는 특별관리대상 기자들이 있다"며 "일부 기자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며 비판적 시각을 유지했지만 나머지 몇 명의 기자는 그야말로 황 교수의 '홍보대행사' 직원 같은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줄기세포 연구, 모두 사기라면 어쩌죠"
황창규 삼성반도체 사장의 선견지명?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사진)이 지난해 9월 22일 <동아일보>가 주선한 황우석씨와의 대담에서 '줄기세포 사기극'의 가능성을 거론했다는 주장이 터져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이성주씨에 따르면, 황 사장이 갑자기 "줄기세포 연구가 모두 사기라면 어떡하죠?"라고 질문을 던지자 황씨는 순발력 있게 "그럼, 제가 다 책임을 지겠습니다"하고 받아넘겼다는 것이다.

황씨는 대담이 끝나자 황 사장에게 갑자기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실을 꼭 한 번 보여주고 싶다"며 예정에 없던 실험실 방문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아>는 문제의 발언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논문 조작이 사실로 드러난 지난해 연말 김학준 <동아> 사장은 부서 망년회에서 기자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밝히며 "다들 웃고 넘어갔지만, 그때 그 말의 의미를 알았어야 했는데…"라고 아쉬움을 표했다고 한다. 동석한 김 사장의 부인도 "유태인들은 어릴 때부터 안 속는 법을 가르친다"고 맞장구쳤다.

황 사장은 24일 삼성전자 홍보실을 통해 "황 교수와 만났을 때 그런 얘기를 나눈 기억이 없다"고 김 사장의 전언을 부인했다.
취재원의 신용카드로 취재원도 없이 자기들끼리 흔전만전 돈을 쓰는 것은 변명의 여지없는 '뇌물'이라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검찰은 황씨의 논문 조작과 함께 연구비에 대한 수사도 병행하고 있지만, 기자들까지 수사를 확대한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씨는 저서에서 <사이언스> 논문 교신저자였던 섀튼 피츠버그대 교수에 대해 "그는 줄기세포 연구의 대가도 아니었고, 황씨와 비슷한 복제분야 전문가일 뿐"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과학기술부가 2004년 제1회 서울 줄기세포 심포지엄에 섀튼을 초청하려했지만 그가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없는 것을 보고 초청대상에 제외됐는데, 황씨의 영향력 행사로 우여곡절 끝에 초청됐다는 비화도 들려줬다.

이씨는 "지나친 반미정서 때문에 차분한 일 처리가 안 보일 뿐이지, 미국도 결국 섀튼의 잘잘못을 단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씨는 "프랑스가 드레퓌스 사건을 반성하며 이성적·합리적 사회로 승화했듯이 우리 사회도 이번 사건을 성숙한 사회의 통과 의례로 삼아야 한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2006-03-24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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