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과학 산업

석회암 동굴 6 - 울진 성류굴

물곰탱이 2010. 3. 28. 14:09


석회암 동굴 6 - 울진 성류굴

경상북도 울진군의 동해안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성류굴의 총 연장길이는 약 870m로서 1963년 5월 우리나라의 석회암동굴로는 최초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63년부터 공개되어 왔습니다. 2007년 학술조사시 수중탐사를 통해 길이 약 65m와 약 20m 인 수중동굴 2개 구간이 새로이 발견되어, 빙하기 때의 한반도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성류굴은 대규모의 종유석, 석순, 석주, 유석, 호수 등이 특징이지만 개방된 지가 오래되어 오염이 많이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성류굴이 발달한 석회암은 지금으로부터 약 4억 7천만 년 전∼4억 6천만 년 전 사이의 지질시대인 고생대 오르도비스기(Ordovician Period)의 얕은 바다에서 퇴적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류굴의 생성시기는 이 석회암 지대가 지각변동을 받아 육지화 되고, 한반도가 형성된 이후, 지금으로부터 약 2백만 년 전에 시작된 신생대 제4기의 빙하기를 거치면서 발달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류굴이 발달되어 있는 석회암의 생성시기와 성류굴이 생성되기 시작한 시기 사이에는 4억 수 천만 년이라는 커다란 시간적 차이가 있는 것이며, 우리나라의 대부분 석회암동굴들은 모두 비슷합니다.

성류굴은 여러가지 이름과 전설을 갖고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이름은 탱천굴(撑天窟)로서, 성류굴의 입구가 위치하는 선유산(해발 200.8m)의 서쪽 절벽이 수직으로 높이 솟아 있는 모습이나, 동굴 속의 신비로운 경관과 관련하여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오른 듯’ 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답니다.

신라 31대 신문왕의 첫째 왕자인 보천태자(普天太子; 통일신라시대 경상북도 울진에서 수도한 왕족)와 관련된 전설을 기록한 삼국유사 권3에 의하면 『보천은 늘 신령한 계곡의 물을 퍼서 마셨다. 만년에 육신이 공중으로 날아 유사강 밖에 이르러 울진국 탱천굴에 머물렀다. 아침저녁으로 수구다라니를 외우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굴의 신이 모습을 드러내어 말하기를 “제가 굴의 신이 된 지 2,000년이 되었지만, 오늘에야 처음으로 수구다라니를 들었습니다. 청컨대 보살계를 받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보살계를 받은 다음날 굴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보천은 놀라고 이상히 여겨 21일을 머물다가 오대산 신성굴로 돌아와서 다시 50년간 수도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따라서 성류굴은 보천태자가 보살계를 득하여 성인의 경지에 올랐으므로 ‘성인이 머물렀다’는 의미로서 ‘성인 聖, 머무를 留’, ‘聖留窟’이라 고쳐 부르고 인근에 성류사라는 사찰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사찰의 불상을 동굴 속에 피신시켰기 때문에 성불이 있었던 굴이라 하여 성류굴이라고 하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또 다른 이름은 ‘선유굴(仙遊窟)’입니다. 선유굴은 성류굴이 발달해 있는 선유산 일대의 풍치가 수려하고 산림이 울창하여 학이 보금자리를 짓고, 신선이 한가로이 풍광을 즐기고 지냈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고려말 이은의 관동유기(關東遊記)와 조선 초기 김시습의 선유굴유기(仙遊窟遊記) 등에 기록이 남아 있답니다.


 길게 드리운 종유석, 커튼이 장관입니다만 표면이 검게 오염(?)되어 있습니다.
 
 석순, 석주들도 많이 발달되어 있으나 역시 표면이 많이 검습니다.
흑색오염이라고 부르는데 오랜 세월동안 먼지가 쌓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동굴 천장의 모습입니다.
 
 
 
 
 
 
 
 



글 / 사진 / 이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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