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

27개국 함께 탄 새 EU號… 美·中과 3강 구도 재편 뱃고동 (한국일보)

물곰탱이 2009. 12. 2. 19:17

한국아이닷컴! 막강 미디어 포털!정정당당한 신문 한국일보

 

 

27개국 함께 탄 새 EU號… 美·中과 3강 구도 재편 뱃고동

 

리스본 조약 발효 이후의 유럽
 
유럽연합(EU)의 정치적 통합 가속화를 목표로 한 리스본 조약이 1일 발효됐다. EU 27개 회원국이 새로운 유럽을 향해 나가는 리스본 체제를 출범시킨 것이다. 아메리카합중국(USA), 즉 미국에 견주어 'EU 합중국이 됐다'는 아직은 성급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탄성들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또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EU 대통령'으로 추켜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방향은 맞다고 해도 EU가 리스본 조약의 발효로 '합중국'이 된 것도 아니고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대통령으로 부르기에는 권한이 그리 크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앞으로의 EU'는 '과거의 EU'와 어떤 차이가 있으며, '강력해진 EU'의 내적 균형유지와 상호견제는 어떤 시스템을 통해 이뤄지는 것일까. 새로운 EU에 대한 궁금증을 Q&A로 풀어봤다.

27개 회원국간 의사결정은
각국 인구에 따라 의석수 결정
의결체계도 달라져 獨큰 이득

美연방제처럼 단일國될 가능성은
주권 침해·불평등 불만 상존
'EU합중국'은 아직 먼 이야기

한국에 미칠 영향은
FTA 등 득실 판단 아직 일러
교섭창구 명확해진 것은 장점

Q: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으로 임명된 헤르만 판 롬파위(62ㆍ벨기에)를 'EU대통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롬파위가 EU 최고의 실세인가?

A: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포르투갈)은 지난 10월 언론들의 연이은 'EU 대통령' 언급에 대해 "EU대통령 같은 것은 없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적이 있다. 그는 "유럽의회 의장(President of Parliament)이 있고 집행위원회 위원장(President of the Commission)이 있는 것처럼 정상회의에 상임의장이 생기는 것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실제 롬파위는 1년에 4번 정상회의를 주재하는 것 외에 실권이 많지 않다. 정상회의의 힘이 롬파위에 속하는 게 아니라, 정상회의에 참여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같은 각국 정상들에게 쏠린다고 보는 것이 현실에 가깝다. 롬파위는 중재자 역할에 방점을 두게 될 것이다.

한스 게르트 푀터링(독일) 유럽 의회 의장은 리스본 조약 발효로 실권이 더 커졌다. 인사ㆍ예산안 외에 정책 표결 강화 등 유럽 의회의 권한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결로 정책을 결정하는 의회의 특성상 의장의 역할에도 한계는 있다.

때문에 사실상 실세로 유럽의회에서 5년 임기를 재신임 받은 바로수 위원장과, 새로 지명된 캐서린 애슈턴(영국) EU 외교ㆍ안보 대표가 꼽힌다. 바로수는 EU의 행정부라고 할 수 있는 집행위원회를 이끌고 있고, 애슈턴 대표는 강력해질 EU의 외교정책을 총괄하게 된다. 더 세부적으로는 집행위원회 내부에서도 카렐 데 휘흐트(벨기에) 통상 당담 집행위원, 미셸 바르니에(프랑스) 역내시장ㆍ금융담당 집행위원 등 실권을 가진 '장관'들의 권력이 만만치 않다.

Q: 리스본 조약 발효가 세계 질서에 어떤 영향을 줄까? 미ㆍ중의 2강(G2) 구도가 EU까지 포함한 3강 구도로 재편될까?

A: EU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분명하다. EU의 목소리가 더욱 강력하게 하나로 모아지기 때문이다.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외교ㆍ안보 대표를 신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외적 측면에서 상징성과 대표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리스본 조약은 EU에 법인체(legal person)의 자격을 부여해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 가입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국제기구에서 유럽의 통일된 목소리를 강하게 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목적에 비해 담당주체들, 즉 '플레이어(player)'들이 너무 무명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롬파위 상임의장과 애슈턴 대표는 국제사회에서 인지도가 거의 없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가 애초 상임의장 후보로 거론됐다가 배제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한 것도 이 때문이다. EU국가들 간의 견제가 리스본 조약이 추구하는 목적 달성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Q: 강대국과 약소국을 망라하는 EU가 불협화음 없이 운용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EU내부의 의사결정 방식, 힘의 견제와 균형은 어떻게 변하나.

A: 유럽의 5억 인구를 대표하는 유럽의회는 736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데, 각국의 인구수에 따라 의석수가 정해져 있다. 이들은 모두 각국에서 직선제로 선출되며, EU시민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국가에서 투표하는 것과 후보로 출마하는 것이 모두 가능하다.

의회 의석은 철저히 인구수에 비례하지만 EU이사회는 지금까지 만장일치제를 택해왔다. 약소국이라도 동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셈이다. 집행위원회도 27개국에서 각각 1명의 위원을 파견하도록 돼 있어 평등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리스본 조약은 정책의결의 효율성을 위해 만장일치제를 폐지, 약소국들의 반발을 샀다. 정상회의 이사회는 만장일치제를 유지하지만, 각국 장관들이 참여하는 각료 이사회는 이중다수결제(회원국 인구 65%, 15개 회원국 이상 찬성제)를 적용하게 된다. 일부 국가가 반대해도 정책의결과 집행의 강제가 가능해진 것이다. 집행위원회 또한 27개국에서 각 1명씩 파견 받던 것을 18개국에서의 1명씩 파견으로 바뀌었다. 리스본 조약은 강력한 EU를 위해 약소 회원국들의 희생을 강요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의결체계 개편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의 인구가 가장 많은 데 유럽 의회뿐만 아니라 각료 이사회 의결까지 인구수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독일의 침공을 받았던 폴란드가 이중다수결제를 격렬히 반대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독일이 EU집행위원회와 외교ㆍ안보 대표 등 요직에서 배제된 것도 견제의 의미가 있다. 영국, 프랑스 등이 요직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로비전을 펼친 것과는 대비된다.

Q: 리스본 조약 발효로 인해 EU 회원국들은 자국의 주권을 더 많이 제한 받게 되나?

A: 그렇다.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이 최근까지 "리스본 조약은 위헌"이라고 비준 서명을 거부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다만 '회원국들이 기꺼이 동의한 주권 제한'이라고 하는 것이 더 현실과 부합한다. 물론 약소국들 중에는 EU의 우산아래로 들어가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리스본 조약을 수용한 곳도 있다. 아일랜드가 1차 국민투표에서 리스본 조약 비준을 부결했다가, 금융위기 뒤에 2차 투표에서 가결한 것이 그런 맥락이다.

리스본 조약의 특정 규정을 심각한 주권 침해로 보고 받아들일 수 없다면, 해당 조항의 적용에서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다. 기본권 헌장에서 예외를 요구한 영국, 폴란드, 체코가 그런 경우다. 다만 통상, 금융, 경쟁(공정거래)과 같은 주요 분야에서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적용을 예외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특히 의결방식이 만장일치제에서 다수결제로 변경된 것도 약소국들로선 주권침해의 측면이 있다.

Q: EU가 미국의 연방제처럼 하나의 국가(유럽합중국)가 될 가능성은 없나.

A: 그러한 움직임이 있었다. 리스본 조약의 전신인 '헌법 조약'은 원래 국기(國旗), 국가(國歌)와 같은 상징을 포함하고 있었다. EU에게 회원국 위의 국가, 즉 '초국가'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회원국들의 심각한 반발을 불렀고, 헌법 조약은 폐기됐다.

회원국 사이에서 주권침해와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EU합중국' 탄생은 아직은 먼 이야기이다.

하지만 EU가 오랜 역사를 거치며 정치적ㆍ경제적 통합의 단계를 높여왔다는 점에서 'EU합중국' 탄생 가능성을 O%라고 하기는 어렵다. 일단은 리스본 체제의 성공적 정착을 지켜볼 일이다.

Q: 리스본 조약이 한국에 미칠 영향은.

A: EU통합 강화가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에게 장점으로 작용할지, 단점으로 작용할지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무척 복합적인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주요 현안인 한ㆍEU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서도 그렇다. 한국 대표단 관계자는 "EU는 어디까지가 각 국가 소관이고, 어디서부터가 EU공통 소관인지 모를 정도로 복잡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리스본 조약 발효로 EU의 업무 대표성이 강화되면서, 교섭 창구 자체가 명확해졌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유럽 의회 기능 강화로 FTA비준 동의권이 새로 부여되면서, 유럽 의회에 대한 로비도 필요하게 됐다. 한ㆍEU FTA 협상 결과에 반발했던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 등 이익단체들도 치열한 유럽의회 로비전에 뛰어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진희기자
입력시간 : 2009/12/01 02:35:21 수정시간 : 2009/12/01 22:36:25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