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재테크

쌍용차 돕겠다면 차 한 대 더 사줘라

물곰탱이 2013. 1. 15. 16:37

중앙일보  뉴스

 

[이철호의 시시각각]

쌍용차 돕겠다면 차 한 대 더 사줘라

 

입력 2013.01.15 00:00 / 수정 2013.01.15 00:00

 

이철호 논설위원

 

쌍용차의 무급휴직자 복직에 대해 민주노총과 진보언론은 “국정조사를 피하려는 꼼수”라고 평가절하한다. “일할 물량이 없어 또 휴직시킬걸…”이란 사족도 단다. 진보진영은 쌍용차 사태를 잘못된 해외매각, 조작된 회계부정, 고의 부도, 기획된 정리해고로 몰고간다. 송전탑 농성과 23명의 자살을 내세워 사회적 약자(弱者)의 감정선도 건드린다. 하지만 이제 현란한 정치적 언어에서 벗어나 쌍용차의 냉정한 본질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쌍용차가 왜 이 지경이 됐는가. 해외 자본의 ‘먹튀’와 옥쇄파업, 정리해고 등은 단지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시장의 흐름을 전혀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쌍용차의 주력은 무쏘와 코란도 같은 2000㏄ 이상의 디젤엔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고유가로 디젤 값이 엄청 올라버렸다. 휘발유의 절반에서 엇비슷한 수준까지 뛰었다. 여기에다 현대차와 GM대우, 르노삼성까지 모노코크 차체의 SUV를 쏟아냈다. 이들은 쌍용차의 프레임형 차체보다 훨씬 가볍고, 연비가 높고, 생산비용이 저렴해 시장을 압도했다. 부도-법정관리-매각을 반복해 온 쌍용차는 앉아서 당했다.

지난해 쌍용차는 내수(4만7700대)와 수출(7만3017대)로 모두 12만717대를 팔았다. 특히 러시아에 3만2328대나 수출했다. 혹한의 날씨와 드넓은 땅의 러시아에 힘 좋고 내구성이 뛰어난 쌍용차가 먹혀든 것이다. 여기에다 반제품(CKD) 수출에 주력해 러시아의 완성차 수입관세(30%)를 피한 것도 한몫했다. 그렇다면 쌍용차의 기적이 다시 올 수 있을까? 글쎄다. 우선 쌍용차는 생산능력 연간 25만 대의 겨우 절반만 생산해 규모의 경제에 한참 못 미친다. 또한 디젤 값이 기형적으로 쌌던 예전의 호시절로 돌아가기 어렵다.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디젤이 휘발유보다 비싼 게 대세다.

국내에서 쌍용차는 뒤쪽에 화물칸을 갖춘 액티언·코란도의 스포츠형이 주력이다. 생계형 화물차로 분류돼 연간 세금이 3만원을 밑돌아 주로 틈새시장에서 팔리는 형편이다. 또한 고유가로 연비가 나쁜 SUV는 찬밥이지만, 쌍용차의 라인업은 모두 묵직한 중대형뿐이다. 러시아 수출이 계속 잘 나갈지도 자신하기 어렵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러시아는 자동차 할부금융 대상을 60만 루블 이하로 제한하고, 현지 부품 사용률도 60% 이상 요구하고 있다. 자국업체에 유리하게 보호주의로 돌아선 것이다.

 

쌍용차의 희생양은 비단 해고 노동자뿐이 아니다. 부품업체들도 박살나고, 쌍용차 소액주주들의 주가는 8분의 1토막 났다. 산업은행 등 수천억원씩 돈이 묶인 금융기관들도 골병이 들었다. 상하이차 역시 15:1 감자로 몇 푼 건지지 못한 채 철수했다. 한국에선 상하이차를 기술 빼돌리기와 ‘먹튀’로 손가락질하지만, 중국은 거꾸로 쌍용차를 대표적인 해외 투자 실패로 지목하고 있다. 웃어넘길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이다.

지금 쌍용차에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다. 대주주인 인도의 마힌드라가 약속한 1조원이 들어오는 게 유일한 생명줄이다. 친환경 고효율의 1500㏄급 소형 엔진을 개발해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는 게 급선무다. 그래야 최소한 연간 25만 대까지 생산량을 늘리고, 러시아·인도·브라질 등 국제 틈새시장에서 팔아야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 지금은 마힌드라가 본사 이사회에 쌍용차 투자 계획을 올려 승인을 기다리는 민감한 시기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국정조사를 압박하고, 민주노총 해고자들은 신차 발표장까지 몰려가 재를 뿌리고 있다. ‘함께 죽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야당은 걸핏하면 쌍용차를 들먹인다. 4년 전 옥쇄파업 때 쌍용차 직원 부인들이 야당 의원들 앞에 무릎을 꿇고 “제발 공장에서 나가 달라”며 눈물짓던 장면이 떠오른다. 정말 쌍용차를 위한다면 가만히 지켜보는 게 예의일 듯싶다. 그리고 차 한 대라도 더 사주는 게 돕는 길이다. 지난해 쌍용차가 19대 국회의원 당선자에게 할인판매를 했을 때 딱 한 명만 체어맨을 사주었다. 그것도 새누리당 김장실 의원이었다. 누가 진짜 쌍용차를 위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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