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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이었던 인류, 비타민D 때문에 色 분화하다

물곰탱이 2012. 8. 11. 11:48

흑인이었던 인류, 비타민D 때문에 色 분화하다

 

● 인류 진화, 뜨거운 주제들… 피부색의 미스터리


지금 한국은 여름 휴가 기간 막바지일 겁니다. 산이며 바다로 가서 몸을 그을리며 일광욕을 즐기는 독자도 많겠지요. 한때 이런 '선탠'이 인기를 끌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외선이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강한 햇볕으로 인한 피부암을 걱정하게 됐습니다. 자외선 차단제 사용이 크게 늘어났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로 자외선 차단제의 남용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 보건당국이 "비타민D 부족이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경고할 정도입니다.


 

 

육식 하면서 맨살로 변해


자외선 차단제는 피부암 예방을 위해 쓰기도 하지만, 미용 목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희고 매끄러우며 부드러운 피부는 많은 사람의 희망 사항입니다. 그런데 동물 전체로 보면 이런 피부는 대단히 특이한 경우에 속합니다. 굴속에서 일생을 보내는 일부 설치류를 제외하고, 포유류 중 인간처럼 털로 덮이지 않은 반질반질한 피부를 가진 동물은 거의 없으니까요.


인류의 피부에 정말로 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피부에는 몸집이 비슷한 다른 포유류와 비슷한 수의 모공이 있습니다. 털의 수도 비슷합니다. 다만 길이가 짧고 색이 연한 솜털이 많아 털이 없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인간은 털의 수가 줄어서가 아니라, 털의 종류가 바뀌어서 '맨몸'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인류의 털은 언제부터, 왜 솜털로 바뀌었을까요. 이와 관련해서는 육식을 시작하고부터라는 가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털이 있는 동물들은 주로 초저녁과 아침에 온힘을 기울여 사냥을 합니다. 해가 중천에 걸려 있는 동안에는 그늘을 찾아 쉽니다. 사자를 생각해 보세요. 수사자는 멋진 갈기와 윤기가 흐르는 털을 갖고 있습니다. 보기엔 좋지만 이런 몸으로 대낮에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요. 모피옷을 입고 한낮의 아프리카 초원을 뛴다고 생각해 보세요. 너무 더워 정신을 차리기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맹수들은 한낮이면 체온을 발산하기 위해 입을 벌리고 뜨거운 숨을 계속 내쉽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시속 65km의 속도록 힘껏 달려 날쌘 영양을 잡는다는 건 사자 입장에서도 정말 하기 싫을 것입니다.


사자 피해 대낮에 사냥


인간은 바로 이때, 즉 맹수들이 움직이지 않는 대낮을 노려 사냥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만약 인간마저 온몸이 털로 덮여 있다면 어떨까요. 사자처럼 대낮에는 맥을 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털이 없는 맨몸이 처음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마 우연한 돌연변이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닌 인간은 긴 털이 없는 맨몸 덕분에 몸에 난 땀을 바로 증발시켜 뜨거운 체열을 식힐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기발한 방법으로 인류는 아프리카의 한낮을 정복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장점이 생기면 예기치 못한 단점도 나타나는 법입니다. 땀을 흘려 체온을 조절하게 되면서 인간은 그만큼 물에 의존하게 됐습니다. 점점 건조해지는 아프리카에서 물을 구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졌을 것입니다. 따라서 행동반경 내 어디에 물이 있는지가 대단히 귀중한 정보가 됐습니다. 물웅덩이 또는 강물은 계절에 따라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이와 관련한 정보를 저장(기억)하고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일이 중요해졌습니다.


맨살 피부에 치명적인 자외선도 큰 문제였습니다. 자외선은 피부암을 일으키기도 하고,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체내의 엽산을 파괴해 기형아를 낳을 확률을 높입니다. 그러므로 털 없이도 자외선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졌죠. 그런 역할을 해 주는 것이 바로 멜라닌 색소입니다. 이 색소가 많아질수록 피부색이 검어집니다. 인류는 대부분 흰색 피부를 가지고 있는 다른 포유류와 달리 검은 피부를 지니게 됐습니다.


최초 인류는 모두 '흑인'이었다


맨살 피부를 가진 최초의 인간들은 피부가 검었습니다. 인간 모두가 '흑인'에 가까웠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인류는 다양한 피부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인간 집단은 다시 피부색이 옅어졌다는 뜻입니다. 몸에 해로운 자외선을 막아주는 멜라닌을 얻었는데, 왜 이것을 다시 없애야 했을까요.


인류는 가장 햇살이 뜨거운 적도 지방에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빙하기가 반복됐습니다. 빙하기에는 구름 낀 날씨가 계속돼 햇빛을 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여기에서 적도 지방에서와는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외선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자외선은 비타민D(인간의 몸이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비타민)의 합성에 꼭 필요합니다. 비타민D는 칼슘의 흡수에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뼈가 물렁해지고 형태가 일그러집니다. 비타민D가 부족한 시기가 길어지거나, 성장기 때 부족하면 구루병(뼈의 변형과 성장 장애가 주요 증상)이 생깁니다.


특히 가임기 여성의 뼈가 일그러지면 곧바로 삶과 죽음의 문제가 생깁니다. 아기가 나오는 골반뼈 때문입니다. 산모와 아기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증세 앞에서 인류는 다시 멜라닌이 없는 흰 피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부색은 오랫동안 흑인종, 백인종, 황인종 등 인간의 종류(인종)를 구분하는 기준이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1960년대부터 이런 구분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피부색이 짙은 지역과 자외선이 강한 지역이 일치한다는 사실은 인류의 피부색이 환경에 적응한 결과임을 나타낸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피부색이 사람의 종류를 구분하는 특별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었지요.


이에 더해 인종이란 것이 생물학적으로 구분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란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생물학적 또는 해부학적으로 동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피부색에 기초한 인종 구분은 더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됐습니다.


이상희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
정리=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동아일보 입력2012.08.11 03:07 수정2012.08.1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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