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

히틀러의 대중조작 기술

물곰탱이 2010. 10. 19. 22:54

이 글은 웹서핑 중 우연히 읽게 되었으며..

기독교에 대하여 논하려는 것이 목적은 아니고..

다만.. 지지판에 만연되고 있는 <대중조작>현상과 유사한 부분이 많기에..

참고삼아, 재미삼아 읽어들 보시라고 펌해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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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서 나오는 대중조작술을 간추린 것이다. 내가 보기엔 기독교와 너무 흡사하다. (실제로 히틀러는 대중조작을 연구하기 위해 기독교를 공부했다고 한다.)

 

1. 토론은 국민 중에서 가장 지성이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을 것.

한마디로 띨띨한 애들한테 맞춰주라는 게다. "예수천당 불신지옥"같은 모토를 내세우라는 게다. 얼마나 간단한가? 믿으면, 천국가고 안 믿으면, 지옥간다는 게다. 이정도면, 다니엘 학교 댕기는 애들도 이해 가능한 수준이다.

 

2.토론의 근거가 되는 과학적 논리를 피할 것.

"예수천당 불신지옥"에 무슨 과학적 논리가 있던가? 그냥 믿으라는 게다.

 

3. 간단한 요점을 수천 번이고 반복할 것.

기독교는 정말 수천 번이고 반복한다.-_-

 

4. 대중의 관심을 잃지 말 것.

관심 없어질 때쯤 되면, 목사가 나서서 강간을 하던가, 사기를 치던가 아니면, 단군상 뽀시기 등으로 끊임없는 관심을 받을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준다.

 

5. 다면성을 추구하지 말 것.
오직 예수만 거들먹 거린다. 부처고 알라고 그딴거 다 싸이비라 서슴없이 깐다.

 

6. 요점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거듭 반복할 것.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본다.

 

7. 토론의 방법을 다양하게 만들지 말 것.

결론을 정해 놓고 과정을 껴 맞추는 방법을 쓰면 된다. 기독의 경우는 결론이 항상 두가지다. 주님은 은혜이던가 사탄의 소행이다. 즉, 좋은 일이 일어나면, 주님의 은혜고 나쁜일이 일어나면, 사탄의 소행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면, 그 근본으로 파고 드는 길이 생기기 때문에 원천봉쇄시키는 것이다.

 

8. 반대자에게도 일리가 있다는 사실은 조금도 내세우지 말 것.
히틀러는 1차 대전 중 독일의 이름으로 전쟁터에 참가한 유태인이 10만이 넘었고, 1등 무공 훈장을 받은 자가 1000명이 넘었으며, 전사 및 행방불명 등이 1만 명이 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히틀러가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것인가? 기독도 이와 똑같다. 반대하는 자는 사탄이라는 걸 만들어서 갖다 붙여버리면, 끝난다. 사탄은 악마요, 인간을 더럽히는 자라는 게다. 이에 대한 이의를 붙이면, 또, 이단이라는 걸로 치부해 버리면, 바로 game over다.-_-

 

9. 어중간한 토론은 좋지 않으므로 이것이 아니면 저것, 사랑이냐 증오냐, 진실이냐 허위냐를 강조할 것.
예수와 사탄이 있을 뿐이다. 이는 다면성을 인정하지 말라는 말과도 어느 정도 통한다. 가장 단순한 논리, 즉, 이분법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인 것이다.

 

10. 근본 원리에 집중하여, 이것을 무한히 반복할 것.

근본원리란, 예수나 야훼따위를 들먹이는 것이고, 실제로 기독은 이를 무한히 반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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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임을 특정 대상에게 돌린다.
히틀러가 공격한 대상은 둘이다. 하나는 유태인이고, 또 하나는 바이마르 공화국이다.
불과 3~4년 만에 수천배의 물가 상승이 일어났고, 연합국측에 보상해야할 전쟁 보상금은 감당하기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히틀러는 이를 바이마르 공화국의 무능으로 매도했으며, 독일 대형 백화점의 80%를 쥐고 있는 유태인을 공격했다.
그렇지 않으면, 대다수의 독일 국민들은 자신의 민족이 무능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던 것이다. 그러나, 히틀러의 논리대로 라면, 그들은 그런 무기력함과 나라를 망쳤다는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었다.
기독교는 회개함으로써 죄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강간을 해도, 회개하면, 끝난다. 신으로부터 용서를 받음으로, 모든 죄는 지워진다. 어떠한 책임감도 없다.

 

2. 대중이 빠져들게 한다.

조명등의 눈부신 빛, 열광적인 광채, 군중의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킬 만큼의 우렁찬 행진곡, 북, 팡파레 등이 엮어내는 음향들, 횃불, 깃발의 물결, 인간의 사고력을 정지시키는 인간의 기계화....
다소 어두컴컴한 상황에서 사고력을 마비시켜버린다. 옆에 있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열광함을 보며, "나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이들도 잘못되었다. 그러나 이 수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다.
아마, 기독교인들이 전 세계 1/3이 잘못된 판단을 하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을 가끔 보았을 것이다. 다수가 정의는 아니다. 히틀러가 어떠한 지지세력도 없이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는가? 아쉽게도, 히틀러가 집권할때 쯤, 자발적인 히틀러의 지지자들이 1/3 가량이었다. 수치까지 비슷하더군.

 

3. 일체감을 형성시키기 위해 적을 만든다.

히틀러가 만든 적은 역시 대표적인게 유태인이다. 국민의 1%인 유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킴으로써, 나머지 99%의 국민의 단합을 꾀한다. 물론 그 국민이 모두 동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동참하는 자들의 단합된 힘은 100%가 뿔뿔이 흩어져있을 때보다 훨씬 세다. "우리"와 "우리가 아닌자"의 구분을 명백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단결을 꾀하는 방법이다.
사탄이니, 어쩌니 하며, 별다른 죄도 없는 자를 공격하게 하는 것이 이와 같다. 길거리에서 개떼로 나와 찬송가 부르는 자들은 그러한 일체감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4. 우월성을 심어준다.

나치즘은 민족주의라는 기반 위에 서 있다. 독일 국민이 어쩌구 하는 것들은 수두룩하게 들어보았으리라. 그 민족의 우월성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남을 깎아 내려서 자신이 상대적으로 올라가는 방법이 있고, 스스로 자화자찬으로 자신을 끌어 올리는 방법이 있다. 전자는 유태인을 공격하는 방법을 동원하였으며, 후자는 애매모호한 선동으로 이루었다고 볼수 있다.
기독교 사람들이 여기에서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줄께요"등을 발언을 하는 것은 무스히 보았으리라 본다. 그런 우월의식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 즉, 자신은 신의 자손이라는 허무맹랑한 우월의식이다.

 

5. 믿고 부빌 언덕을 준다.

나치즘이 바로 그 언덕이고, 독일이라는 국가가 바로 그 언덕이었다. 그 속에 존재하면서, 일체감을 통해 안정을 얻는 것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전후의 상실감과 경제적 몰락 등으로 인해 망가진 사람들과 전직 군인 (즉, 전쟁이 없으면, 사회적으로 할 일이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 안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중 예수를 자기 빽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 수두룩하다. 스스로 나서서 남을 정죄하고자 하는 자들 말이다. 그들이 믿는 것은 바로 예수다.